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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식성묘와 한식의 유래

碧空 2010. 9. 25. 13:58

 

 

* 어제 9대 조부모님 묘제중 축문을 읽고 있는 근곡 모습입니다*


 

寒食省墓와 墓祭

 

내일이 한식 입니다 한식에 우리는 조상의

묘를 말 그대로 살펴보는 禮가 성묘라는 미풍양속이 있읍니다

 

겨우내 잔디가 들떠있거나 짐승들로부터 묘의 봉분이 훼손 되었는지

를 살피고 인사드리는  것을 말한다

 

한번쯤 시간내어 조상님들의 묘역을 찾아 주변에 지저분한 것들을

정리하고  조상님을 그리는 한식 성묘를 하시길 바랍니다

 

瞻掃封瑩(첨소봉영)=묘역(墓域)을 쓸고 봉분(封墳)을 우러러보다

 

 寒食의由來

 

寒食은 지금부터 약 2600년전 中國의 춘추시대의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의 계모가 자기의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하기위하여

문공을 죽이고자 할때 그의 측근인 개자추(介子推)가 해외로 피난시켜서

19년간 망명생활을 하였다.

 

그때에 문공이 병이나고 영양실조에 걸렸을때에

介子推(개자추)가 자기의 허벅지를 잘라 국을 끓여먹여 회생시켰다는 속설도있음.


뒤에 文公이 돌아와 王이 되었는데 介子推는 등용하여 쓰지않았다.

 

개자추는 등용하여줄것을 몇번이나 간청하였으나 모두 허사이었다.

개자추는 세상을 원망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綿山으로 들어갔다.

 

그후에 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끝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돌아오지않았다.


문공은 신하에게 명하여 개자추를 불러올 방도를 의론한바

어떤신하가 산에 불을 지르면 나올것이다고 하여 산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개자추는 버드나무아래에서 어머니와 같이껴앉고 불에 타죽었다.

 

문공은 이소식을 듣고 충신을 불에 타죽게한 것을 애석하게 여겨

온나라에 3일간 불을 쓰지못하도록하여 자연히 차거운 음식을 먹게 되었다.

 

그날은 동지로부터 105일 이되는날이었다.

이리하여 이날을 寒食 이라 하였다

 

즉 이날 부터 차거운 음식을 야외에서 먹을수 있는 날씨임으로

조상님께 자연히 제수를 차려 墓前에 禮 를 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문공은 개자추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죽어서라도 가까이 두기 위하여

불탄 버드나무로 나막신을 만들어 발아래(足下)에 신었다.

 

이리하여 족하(足下=三寸間 조카)가 생겼으며

 사는 집에 크기에 따라 호칭도 생겨 나게 되었다

 

황제(皇帝)의 아래에서는 폐하(陛下)=섬돌층계아래라는뜻.

왕(王) " 전하(殿下)=전각아래 "

영상(領相) " 합하(閤下)=다락방.

각하(閣下)=누각 아래(예전에 대통령의 호칭)

장군(將軍) " 휘하(麾下)=대장깃발아래.또는 각하 라 하기도 했다

부모(父母) " 슬하(膝下)=무릎아래.라하였고


그외에 고구려(高句麗)에서는 領相을 태대형(太大兄)이라하고.

長官을 大兄이라하고.

次官을 兄이라하였다.


高麗에서는 領相을 大兄이라하고.

長官을 兄이라하여 李兄.朴兄이라 불렀다한다.

 

李兄 金兄 이라는 말이 下對 하는 말이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잘못쓰면 버릇없는 말이 되었으니

禮 는 시대에 따라 변할수 밖에 없음을

알수 있다




출처 : 근곡풍수지리연구원
글쓴이 : 근곡根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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