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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총아가 재앙이 된다면..../스마트 그리트 참고해야...

碧空 2009. 8. 3. 11:29

 

 

                      <  아주 중요하하고 예리한 지적이 있기에....>

 

[중앙일보 기자 기고문] 

어느 겨울, 바이러스 하나가 사이버상에 출현한다. 인터넷 벌레는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에 전 세계의 메인 컴퓨터망을 파고든다. 감염된 컴퓨터는 다운되거나 속도가 느려진다. 불과 10분 만에 전 세계 컴퓨터 서버 10대 중 9대가 벌레 한 마리의 기습에 녹초가 된다. 국제 간 인터넷 뱅킹이 마비되고 온라인 예매 시스템도 불통된다. 한국에서는 수만 개의 게임방이 동시에 피해를 본다. SF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2003년 1월에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얼마 전 한국과 미국의 주요 사이트가 디도스(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았다. 동시다발적인 기습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공격 방식과 피해 양상에 차이가 날 뿐이지, 우리의 네트워크는 일상적으로 집요한 공격에 직면해 있다. 지난 한 해, 국내에선 하루 평균 300건의 사이버 범죄가 발생했다. 해킹, 바이러스 유포, 메일 폭탄 같이 정도가 심한 사이버 테러도 하루 평균 60건이 일어났다. 온라인 공간에서 언제, 어디서든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 위험사회가 2009년의 한국이다.

초기 사이버 범죄는 주로 낭만이요, 장난이었다. 호기심이나 항의 표시로 어느 기관의 컴퓨터망에 침투해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사이버 범죄는 점점 현실범죄의 흉포성을 닮고 이를 업그레이드해 왔다. 이제 디도스 공격은 회사·기관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수단이 된다. 수십 년 전 식품회사를 상대로 “돈을 내놓지 않으면 식품에 독극물을 넣겠다”는 위협범죄가 유행했었다. 최근에는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귀사 네트워크에 인터넷 벌레 한 마리를 풀어놓겠다”는 식의 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정보화사회는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지닌다. 한국은 정보화 사회의 후발주자였다가 선진국 수준까지 올라간 거의 유일한 나라다. 압축적인 산업화·민주화가 빈부격차·환경오염·떼법정서를 낳았듯, 압축적인 정보화도 사이버 범죄라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냈다.

네트워크 사회에선 모든 유토피아적 상상이 디스토피아적 재난이 될 수 있다. 녹색성장의 대명사인 스마트 그리드만 해도 그렇다. 전력을 정보통신 기술로 통제해 에너지 소모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똑똑한 전력망’ 사업이다. 예를 들면 전력요금이 가장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인터넷이 알아서 전기차를 충전시켜 주는 식이다. 지난달에 스마트 그리드 비전이 발표됐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최초로 전국에 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하는 나라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자력발전소 7기를 짓지 않아도 될 만한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예측도 내놓았다. 관련 업계에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된다’는 카피가 나왔다.

최근 이런 유토피아적 상상을 깨는 지적이 외신에서 나온다. “보안 대책이 없으면 스마트 그리드는 사이버범죄의 온상이 될 것”(CNN)이라는 경고 등이다. 지능형 전력망을 해킹해 들어가 조작한다면 정전사태와 요금조작, 전력과부화 같은 재난을 손쉽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보안이 허술한 현재의 전력·통신망을 그대로 두고 스마트 그리드 개념만 입힌다면 사이버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보통신부가 해체된 뒤 그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 등으로 흩어졌다. 정보화사회 역기능에 대한 정책도 분산됐다. 정보통신부 시절 정보보호기반심의관 산하에 1국3과 33명이 있었다. 이 업무를 넘겨받은 방송통신위원회에는 현재 1개 팀(네트워크정보보호팀) 7명이 있다. 23일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통합 출범했다. 기존의 한국정보보호진흥원·한국인터넷진흥원·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을 합친 조직이다. 초대 원장이 된 전 한나라당 의원은 사이버테러 대책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통합으로 정보보호 조직은 더 쪼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조직·인원 축소도 문제지만 부처별로 산발적인 대책능력만 지닌 것이 더 큰 우려다. 7·7 디도스 사이버 테러를 맞아 기관별로는 그런대로 선방했다. 하지만 수사·정보기관이 며칠이 지나서야 머리를 맞댈 정도로 기관별 공조는 시원치 않았다. 각자 뛰어서는 절대로 제압할 수 없는 게 네트워크 위험의 특징임에도 말이다. 우리는 또 이번에 특정 국가의 특정 사이트만 골라 공격하는 영리한 사이버 괴물을 보며 “누군가는 미래의 새로운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날마다 새로운 위험이 사이버 세상에서 생겨난다. 이것이 현실세계의 추악함과 합쳐지면서 거대하고 실질적인 위험으로 재탄생한다. 스마트 그리드 같은 녹색 총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트워크 위험사회를 종합적·장기적으로 관리할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규연 사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