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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체신부 마이크로웨이브(M/W) 건설 역사

碧空 2009. 7. 23. 15:43

 

마이크로웨이브(M/W) 건설


(1) 마이크로웨이브 제1차 시설계획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시 상호간의 통신 수요는 급증하였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외회선의 공급 문제가 점차 심각해져 갔다.

이에 정부는 경제적, 기술적 양면에서 가장 유효하고 보다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 결과 다중통신망시설이 가능한 장거리기간망을 구성함에 있어

유선반송시설보다 마이크로웨이브시설이 회선량이나 건설비로 보아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통신사업 5개년계획으로 마이크로웨이브통신망 시설에 의한

장거리회선의 증설계획을 수립하였다.

 

1961년 10월 1일부터 AID차관 예비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하여

1962년 8윌 31일 정식 차관신청서를 경제기획원을 거쳐 USOM에 제출하였으며,

그 해 8월부터 12월까지 마이크로웨이브 건설을 위한 중계소 선정(27개소) 및

가시거리 측정을 위한 도상 검토 및 현지 측량 등 일련의 기술조사를 하였다.


USOM측에서는 이와 같은 기술조사를 외국인에게 용역으로 주도록 권고하였으나,

체신부 자체 기술진으로 기초조사, 측량, 설계 및 공사감독 업무까지 수행하여

막대한 외화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인 1963년 6월 30일에 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초단파전신전화건설국(뒤에 장거리무선건설국으로 명칭 변경)을 발족시켜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되어

l964년까지 중계소 건물, 인입도로 및 전력선 가설공사 측량을 끝으로

마이크로웨이브 l차 시설계획이 작성되었다.


그러나 차관협정이 예정보다 지연되어

1964년 7월 2일에 한미공동성명으로 AID차관 840만달러

(사업 내역 : 마이크로웨이브 1,272회선, 조서무선 27회선,

반송단국 136회선, 반송방송 19회선, 국제회선 5회선)의 사용 승인이 발표되었고,

그 해 12윌 8일 경제기획원 회의실에서 AID측과 정부를 대표한

경제기획원측 및 체신부장관이 차관협정에 정식으로 조인하였다.

총 차관액 중 마이크로웨이브 시설비는

외자 769만8.000달러와 내자 8억원의 규모로 계획되었다.


l965년 l2월 30일 기술규격이 검토되어 미국 콜린스(collins Radio)회사와

구매계약을 체결하였으며 l967년 4월 4일부터 기계시설공사가 착공되었다.

당시, 체신부 전송관계 기술직원이 참여하여

미국 콜린스 회사의 설치기술자 2명과 운용기술자 1명의 기술 지원으로

설치공사가 착수되는 한편,

l965년말부터는 중계소의 대지공사와 도로공사가 추진되었다.

 

기술규격에 대하여는 체신부와 한국 육군에 설치되는 마이크로웨이브 시설의

접속 및 앞으로의 증설계획 등 기술적 사항이 부합될 수 있는

단일 기술규격서의 작성에 쌍방 요구사항을 합일화하여

1965년 5월 10일부터 5월 27일까지 기술규격서 심의회를 미국 워싱턴에서

체신부 및 한국육군, USACC 기술진이 참석하여 심의를 마쳤으며,

입찰공고 심의도 1965년 7월 13일부터 미국 포츠몬머드(Fort Monmouth)에서

개최되었고, 1965년 7월 l5일 입찰 권유서가 공고되었다.


총 l,440회선(당초 l,272회선)을 구성하기 위한 시설도입은

제1루트인 서울·부산간을 1차로,

제2루트인 서울·광주간을 2차로,

제3루트인 서울·강릉간을 3차로 구분하였다.

그리하여 자재를 도입하고 설치공사를 순조롭게 진행시켜

드디어 1968년 l2월 20일에 무선장비로서는

l개 RF장비에 600 가입자가 동시에 통화할 수 있는 장거리전송용

최신형 장비가 개통되었다.


l967년에 도입 설치된 마이크로웨이브무선장치는

MW-108C장비로 주파수대역을 6GHz, 최대음성급 회선용량은 600회선으로

전국 루트에 176대를 설치하였다.


(2) 마이크로웨이브 제2차 시설계획

  2차 계획은 l차 계획 당시의 부족 회선의 증설,

전화회선의 예비전송로로 사용하던 TV전송로의 신설,

제주-육지간(목포 양을산)의 대류권산란파통신(스캐터 : Scatter)회선의

2원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계획으로서

미국 수출입은행의 차관에 의하여 사업이 추진되었다.

1969년 7월 23일 차관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설치공사가 진행되어

1970년 12월 31일 마이크로웨이브 804회선의 시설이 개통되었다.


(3) 마이크로웨이브 제3차 시설계획

  3차계획은 기존구간의 회선증설과 이리·포항·울산 3개 시에

마이크로웨이브 단말국을 신설하는 총 924회선의 시설공사를

18일에 체결되었다. 마이크로웨이브 설치공사는

1972년 12월 30일에 준공되었으며

 마이크로웨이브 RF장비를 종래의 MW-108C보다 개량된 장비

MW-108D(주파수대 6.2GHz, 음성급 회선용량 960회선)가

1970년부터 설치 운용된 데 이어

Ms-2l8 무선장비(주파수대 2GHz, 회선용량 960회선) 2대가 처음 도입되었다.

이 공사는 여러 차례의 설치공사 경험이 있는 체신부 직원에 의하여 진행되었으며,

미국 콜린스가 기술자 l명을 지원하였을 뿐이다.


(4) 마이크로웨이브 제4차 시설계획

  마이크로웨이브 시설 4차계획 역시 급성장하는 시외통신 수요와

대시시분의 단축, 그리고 3개 신설 단말국을 포함하는 총 1,164회선의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 계획도 캐나다 EDC차관 648만7,587달러로 추진되었는데,

1973년 1월 11일 차관협정이 체결되었고,

시설은 역시 미국 콜린스회사제이며

마이크로웨이브 기계공사는 1974년 8월 30일 준공되었다.

 

이때부터 6GHz대역에 사용되는 주파수의 배정계획이

주요 간선로에서 사용 한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하였으며,

다른 주파수 대역을 검토하여 공급할 계획을 세웠다.



(5) 마이크로웨이브 제5차 시설계획

  마이크로웨이브시설 5차계획은 이미 사용하였던

6GHz 마이크로웨이브 주파수대의 포화 상태로

타 주파수대의 사용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어

장거리중계구간(50km거리)의 주파수대와 단거리중계구간(30km)의 주파수대를

구분할 계획을 면밀히 검토하였고,

또한 600∼960회선보다 더 많은 회선을 공급할 수 있는

마이크로웨이브 무선장비도 동시에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주파수대를 6GHz대에서 4GHz대로 조정하였고

마이크로웨이브 무선장비도 600∼960회선 용량인 MW-108C와 MW-108D에서

l,698회선 용량인 MS-109E로 변경 도입하기로 확정하였다.

 

MS-109E 마이크로웨이브 무선장비가 도입됨에 따라

다중장비(Frequency pision Multiplex)도 MX-106장비에서

MX-108장비로 바꾸어졌다.

또한 MW-108C와 MW-108D 마이크로웨이브 장비에서 사용하였던

클라이스트론은 진행파관(TWT)으로 바꾸어 졌다.

 

총 3,336회선의 시설계획이 수립되어

l,667만 5,000달러의 캐나다 EDC차경이 1973년 7월 31일에 승인,

1974년 l월 80일 미국 콜린스사와 계약된 이후

1975년 5월 30일부터 1차 자재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는 미국 콜린스회사 기술자의 지원없이 체신부 직원에 의하여

공사가 추진되었다.


(6) 마이크로웨이브 제6차 시설계획

  마이크로웨이브 시설 6차계획은 종전의 캐나다 EDC차관에서

다시 미국 수출입은행 차관으로 전환되어,

총 l,500만달러의 차관협정이 1976년 8월 24일에 체결되어

동년 8월 7일 미국 콜린스회사와 협정 체결 전에 가계약을 맺고

l977년 5월 l일부터 마이크로웨이브 기계공사를 착수하였다.

 

1977년에 신설된 3개 중계소(두태산·송나산·태화산중계소)에서는

전화회선과 TV회선의 분리가 불가피하였고

그 외에 중계소의 위치선정과 전파 전파에 관한 검토 등

수많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으나 이를 잘 해결하였다.


(7) 마이크로웨이브 제7차 시설계획

  마이크로웨이브시설 7차계획은 그 전까지의 장비도입을 외자에만 의존하였으나,

처음으로 국산화계획이 시도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경제기획원에서는 1977년 8월 30일

미국 콜린스회사와 우리나라의 캠코

(KEMCO ; Korea Engineering Manufacturing Co,. )사가 기술제휴와 더불어

외국인투자 합작회사로 한국콜린스회사(현 대영전자통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마이크로웨이브 시설자재의 국산화가 이루어졌다.

 

(한국콜린스회사는 양사 각 50%의 비율로 각각 66만달러를 투자하여 설립되었음).

7차 마이크로웨이브 시설 계획에 있어서는

 ① 국가 안보적인 차원에서 고려한 우회중계망의 구성

     (대전·부산·광주의 유사시 연결중계 시절)

 ② 영남과 호남 지역 상호간의 직접중계망의 구성

    (대구·광주·직접중계회선구성)

 ③ TV중계 전송로의 정상화

    (TV방영이 18:00∼24:00까지 소요됨에 따라 전화회선 공동사용을 해제)

 ④ 서울·지방방송국간의 양방향 중계방식의 구성 등이 고려되었다.

한편, 국산화가 시도된 장비는 마이크로웨이브 반송단국장치이었다.

 

- 전기통신 100년사에서 발췌-

출처 : 전력통신회
글쓴이 : 박근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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