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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못은 곳곳에 있다.

碧空 2008. 2. 14. 11:23

대못은 곳곳에 있다 [중앙일보]

 

선거철이면 정치권에서 가급적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이슈가 지역 사업이다. 특히 문제가 많으면서 지역민의 이해가 크게 걸린 사업일수록 애써 외면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간 지역의 표심을 거스를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점에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압도적인 의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으니 행여 지역 민심이 돌아설까 입조심이 여간 아니다. 다른 분야에 관해선 의견을 분명하게 잘도 피력하지만 지역 문제만큼은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이야기하는 게 고작이다. 대표적인 예가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에 관해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막판에 “말뚝 박고 대못을 박아버리고 싶다”던 바로 그 사업들이다. 지역정책을 다루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행정도시와 혁신도시 얘기만 나오면 앵무새처럼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토지 보상이 거의 끝난 데다 계획을 뒤엎을 경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노무현식 지역정책이 수도권의 기능을 뜯어 지방에 나눠주는 방식이라면 이명박식 지역정책은 수도권과 지방을 함께 키우자는 방식이다. 전국을 5대 광역경제권과 2개 특별경제권으로 묶어 각기 특성에 맞게 발전시킨다는 이른바 ‘5+2 광역발전 전략’이다. 이런 전략이라면 행정도시와 혁신도시를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말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도를 양분하는 행정도시는 정부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릴 게 뻔하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공무원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국회가 있는 서울과 행정도시를 오갈 텐데 이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느냐”고 했을 정도다. 이런 식의 반쪽 행정도시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와도 거리가 한참 멀다. 177개 공공기관을 강제로 전국에 배분해서 만드는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업무 성격과는 아무 관련도 없이 억지로 지방에 나눠주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공기관 이전 정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발전시킨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광역발전전략은 도무지 함께 갈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한편으론 광역발전 전략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행정도시와 혁신도시는 그대로 끌고가겠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렇게 된 데는 노무현 정부의 ‘대못질’이 한몫하고 있다. 그 숱한 논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기말까지 말뚝을 박고 대못을 친 효과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행정도시에 대해서는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 지역인 충청권을 의식해 입도 뻥긋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던 수도 이전 공약의 덫에 발목을 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국 10곳에서 추진 중인 혁신도시에 대해서도 감히 되돌리거나 바꾸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노 대통령이 지난 연말 만사를 제쳐두고 지방을 다니며 말뚝을 박은 탓이다. 혁신도시를 취소할 것 같은 기운이 비치기만 해도 당장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 자리는 일찌감치 내놔야 할 판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역정책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의 저주에서 쉽게 풀려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못질 탓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못이든 말뚝이든 초기에 뽑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의 지역발전 전략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주저앉을 공산이 크다. 자칫하면 노무현식과 이명박식 정책이 뒤섞여 갈등은 갈등대로 커지고 국토는 난개발로 쑥대밭이 될 우려도 있다. 총선을 앞둔 마당에 당장 거론하기가 영 부담스럽다면 잠시 접어두었다가 총선이 끝난 뒤 공론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우선은 해당 지역민을 설득하는 게 급선무다. 행정도시나 혁신도시 대신 지역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과학비즈니스도시나 지역특성화 사업 등 지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청계천 복원 때처럼 진심과 열의를 가지고 설득하면 못할 일도 아니다. 규제의 전봇대만 뽑을 게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대못도 뽑아야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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