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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고향 떠난 지광국사탑, 113년만에 돌아와 섰다
일제에 의해 반출된 지 113년 만에 강원도 원주에 우뚝 선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12일 복원 기념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탑 기단석 네 귀퉁이의 사자상 네 개도 되찾아 ‘완전체’를 이뤘다. [사진 국가유산청]
일제강점기인 1911년 반출됐던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고향인 원주의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경복궁 야외에 서 있던 것을 2016년 보존처리를 위해 해체한 뒤 8년 만이다. 높이 5.39m, 무게 39.4톤에 달하는 이 탑은 고려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으로 불린다.
“마치 늙고 병든 부모님을 10년 정도 치료해서 편히 고향집에 모시는 기분입니다.” 12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하 연구원)과 원주시가 공동으로 개최한 복원 기념식이 열린 날. 행사 참석에 앞서 지난 10년 간 지광국사탑 보존·복원을 담당한 이태종 학예연구사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자상들은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 속에선 탑 하층 기단석 네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1957년 수리 복원 후 행방이 묘연해졌고 반세기 이상 탑과 분리돼 있었다. 이태종 학예사는 2015년 학술논문 등을 뒤지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사자상이 있다는 걸 밝혀내 이번에 제 모습으로 돌려놨다.
‘비운의 석탑’으로 불리는 지광국사탑은 1085년(고려 문종 24) 승려 해린(984~1070, 지광국사)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11년 일본인에 의해 무단 반출돼 경성(서울)의 병원 정원을 장식했고 이듬해 일본 오사카에 반출됐다가 비난이 일자 되돌아왔다. 이후 조선총독부 박물관 소장 유물로 경복궁 야외에 서 있다가 6·25전쟁 때 폭격으로 1만2000개 파편으로 쪼개지는 참화를 겪었다.
1957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복원됐지만 당시 사용재료의 한계로 탑의 표면이 부식되고 장식 조각이 떨어져나가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경복궁 안에서 자리를 옮기다가 2015년 해체·보존처리가 결정됐다. 이를 포함해 총 11번 해체되는 사이 원주→명동→오사카→경복궁→대전(연구원)→원주 등 1975㎞에 걸친 유랑을 했고 마침내 12번째 제 모습을 찾았다.
대학에서 석조 보존처리를 전공한 이 학예사는 불국사 다보탑 및 경주 감은사탑 보존처리 등에 참여했고 2010년 연구원에 입사했다. 지난해 12월 경복궁 담장 낙서 테러 때도 대전에서 출동해 엄동설한 속에 현장 실무를 총괄했다.
“경복궁 낙서를 지우던 그 시기에 지광국사탑 복원 위치를 결정하는 위원회 보고서도 같이 만들었죠. 우여곡절 끝에 우리 손으로, 우리 기술로 다시 세운 지광국사탑이 제 자리에서 편히 안식을 취할 수 있길 빕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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