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독자들은 이 분을 정치 평론가로 알고 계실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로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에겐 ‘DJ 처조카’로도 유명할 터이다. 이영작(李英作) 박사(80) 이야기다. 현직은 기업인이다. 임상시험과 신약 개발 등을 하는 LSK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다. 각기 다른 여러 분야에서 확실한 업적을 남겼으며 한국 정치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었고, 미국 조야에 네트워크가 확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한국의 현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번 대선의 의미, 향후 대한민국의 발전 방향, 북핵 문제 등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각 등에 대해 묻고자 인터뷰를 청한 배경이다.
- 개인적인 말씀은 잘 안 하셨는데,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어떻게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으셨는지,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6.25를 겪었죠. 경기도 산본으로 피난을 갔다가 9.28수복 이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길가에 쓰러져 있는 많은 시체를 목격했어요. 집 앞마당에선 동내 유지의 시체 세 구가 버려진 것을 봤죠. 그 광경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가서 통계학으로 석, 박사를 마쳤어요. 미국에서 대학교수도 하고 공무원 생활도 하던 중에 고모부(DJ)가 미국으로 망명(1982)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정치권 주변에서 여러 일을 겪은 거죠.”
다소 보완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 석사과정 입학허가서를 받은 이영작 학생에게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1969년의 일이다. 1962년 김대중(DJ)과 큰고모 이희호 여사가 결혼한 것이 ‘핍박’의 배경이다. ‘핍박’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이영작의 동생 고(故) 이세작 변호사 때문이다. 이세작 변호사는 사법고시를 성적으로 패스하고 군 복무도 마쳤지만, 평생 관직을 맡지 못했다. 정권 차원에서 모종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한 이영작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 연구를 담당했던 세월도 ‘자의 반 타의 반’이다. 79년 귀국 예정이었지만, 10.26. 이후의 정변 때문에 미국에서 발이 묶였다. 1982년 사실상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한 DJ는 처조카 이영작에게 정치적 조언과 국제 정세 분석 등을 부탁했다. DJ에게 이영작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미국 주류사회와 한인 커뮤니티로 진입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1987년, 92년, 97년 대선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한 이영작은 199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고, 2000년에는 현재의 회사를 설립했다.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는 그를 통계학자, 임상 전문가로 기억한다. 세계 3대 권위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 나오는 내용이다.
- 장기간 미국 생활은 박사님께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태어난 곳은 한국인데 돌아올 수가 없었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 보니, 미국식 관습, 문화에 익숙해졌어요. 그렇게 지낸 30년 미국 생활이 제 사고방식을 상당히 서구식으로 바꿨다고 느낍니다. 귀국 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 문화도, 우리 문화도 낯선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계인’은 외로운 사람이지만, ‘경계 넘어’의 세계를 객관적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영작 박사의 시각이 독특하고 유익한 이유다.
- 다른 대선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번 대선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좌파 정권이 너무 못해서 들어온 정권입니다. 윤 당선자가 대통령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시점이 불과 일 년 전이에요. 일 년 남짓 준비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죠. 우리 정치사상, 준비 기간이 가장 짧았던 대선 후보입니다. 주변에 정치적 빚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국민들이 윤석열 당선자에게 커다란 기대감을 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 후보가 된 것부터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작용이었잖아요. 그래서 다른 역대 대통령보다 운신의 폭이 넓습니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는 출범 전부터 사람들이 커다란 기대를 했어요. 탄생부터가 소위 촛불 혁명에 힘입은 바가 크니까요.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 문재인 좌파 정부라고 하셨는데, 윤석열 당선자의 이념 성향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다른 정치인과 비교하면 국민은 윤 당선자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요. 검사 출신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치를 해오면서 대중들에게 노출되었던 사람이 아니니까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르죠.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석열 당선자가 자유 우파(自由右派)라는 겁니다. 최근의 언행을 보면, 자유 우파로서 한미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북한과 관계에 대해서도 확고한 입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을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거죠. 물론 북한은 대화의 대상이지만,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일본도 중국도 모두 대화의 대상이에요. 제 견해로는, 윤 당선자의 북한에 대한 사고방식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과 상당히 다르고, 어떻게 보면 박근혜 정권의 대북관보다도 더 우파적이라고 봅니다.”
- 좌, 우를 가르는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파의 핵심가치는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고, 좌파의 핵심가치는 평등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능력과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심지어는 일란성 쌍둥이도 능력과 개성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고, 경제는 개인의 능력을 존중한 결과물이죠. 그래서 우파가 집권하면 자유를 존중하는 가운데 경제가 발전하지만, 부작용으로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좌파가 집권하면 ‘불평등’이라는 부작용 해소를 추구하고요. 그래서,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 또 평등을 추구하면서 국가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는 우파에서 발전하고 정치는 좌파에서 발전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좌파인 문재인 정권에서는 정치도 경제도 다 못했기 때문에 나라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 윤석열 당선인이 자유 우파(自由右派)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윤석열 정권이 국민에게 놀라움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전통적인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한미동맹을 강조하겠죠. 적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안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안보가 튼튼해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경제 안보’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안보와 경제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안보가 보장되어야 경제가 있는 겁니다. 타이완을 보세요. 중국이 그렇게 위협을 해도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딱 버티고 서서 ‘타이완 건드리지 말라’고 하니까 경제가 굉장히 발전하고 있잖아요? 타이완의 국민 개인소득이 최근 우리나라보다 높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안보가 곧 경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대통령이에요. 안보가 튼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비교적 담백하고 입장이 분명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근본은 한미관계에 달렸다’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해요. 윤석열 정부가 한미관계를 통해 안보 문제만 확실하게 보장하면 나머지는 우리 국민이 알아서 다 잘할 겁니다.”
- 문재인 정권이 경제도 정치도 다 실패했다고 하셨는데,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패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탈원전이라든가 부동산정책 실패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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