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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숲 이야기 /

碧空 2014. 5. 5. 11:07

책이야기/ 숲의 인문학- 김담(2013.3-글항아리)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 이로 구나-(판소리 단가 –사철가)” 하는 소리가 코끝에서 절로 흥얼거려지는

이른바 만화방창(萬化方暢 -化에 주의 花아님) 호시절 이다. 내가 이봄에 찾아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심 안 서림(書林)에서 꽃보다 더 고운 책 한권, 나는 늘 심마니 마음으로 찾고 있는데 드디어 “심봤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책 한권 찾아냈다.

 

<숲의 인문학>, 나는 아직 저 <숲>이 무엇인가 잘은 모른다. 그 설명은 소설가 김훈의 책 <자전거 여행>중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에서 한말을 인용하고 있을 따름이고. 근년에 와서 빈도 높게 쓰이는 <인문학>이란

 말은 좀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용어이고, 더 더욱 개념 잡기가 내겐 어려운 말이다. 매스컴이나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고사한다고 걱정인데. 기업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일고 있는 현상을 접하게 되니 무슨 이 이유인가?

서점가나 출판가에서는 한동안 자기개발서가 대세를 이루더니 얼마 전부터는 무슨무슨 인문학이니, 인문학

경영이란 책들이 홍수를 이루는 실정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할 수는 없으나. 요약해보면 인문학이란 “세상과 인간을 바라다보는

수준 높은 시각을 갖게 해주고 인간을 정말 인간답게 만드는 학문”이라고 한다. 즉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 人文(인문)이고 그 사람들 사인에 사람 문늬(人紋)를 보는 것이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숲>과 <인문학>의 관계를 보자. 숲을 자연이라는 말과 등치할 때 사람의 학인 인문학과 숲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인간은 자연을 경배하기 위해 종교를 창안했고. 자연을 찬미하기 위해 예술을 창안했으며. 자연을 탐구하기

위해 과학을 창안했다-서울대 명예교수이며 문화재 전문위원 이인규)”는 말에 동의하면서 결국 종교. 예술. 철학,

과학은 인문학의 한 요소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숲도 인문학의 장르 속을 벗어 날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2월 말부터 내 책상머리에는 낡은 풍속도 한 점이 걸려 있다. 봄을 생각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놔뒀다고

스스로 느낀다. 아마 옛 그림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은 본적이 있는 그림, 초상화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작품

중에 내가 유독 좋아서 보는 그림이 이 <나물캐기>이다. 때는 이제 막 잔설이 사라지고 있는 이른 봄, 산골

양지 비탈 산들 중턱, 머리에 미영수건 두르고 치마 단을 약간 오린 두 여인, 허리엔 종다래끼를 찻고 한손엔

나물 캐는 꼬챙일 쥐고 있다. 한 여인은 허리 폄을 하고 한 여인은 바닥의 나물을 찾는다. 먼 산은 보래고개

언덕인 냥 가파르게 높고 하늘에는 그래도 새가 힘차게 날고 있는 모습. 두 연인 네는 냉이. 꽃다지. 씀바귀.

쑥을 캐고 뜯는다. 초근목피 중에서 초근(草根)이다. 그래 이름은 오늘날과 같으나. 나물 캐는 의미는 오늘과

아주 다르다. 이들 여인이 캐는 나물들은 지금 우리가 봄의 맛과 향취 게다가 추억을 느끼려는 그런 향수 젖은

 먹거리. 즉 웰빙이니 힐링이니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들이다. 긴 겨울을 넘기고 바닥난 식량 독,

배고파 보채는 어린 자식, 지금 상상 할 수 없는 식구숫자, 그들 가족의 한 끼 허기를 메우기 위해, 들로 나온

주부가 바지런한 손놀림으로 나물 캐서 갱죽이나마 끓여 허한 속을 채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상 나들이가

이 <나물캐기>이다. 보이지 않아도 그들 가족들의 눈은 퀭하니 들어갔고 어린 자식들은 얼굴에 마른버짐이

일고 있으며. 저 여인들도 한참 <나물캐기>를 하다가 허리를 펴면 눈에서 아지랑이 피고 눈 속 작은 별들이

어른거릴 것이다. 영양실조 증상. 나는 이 그림 <나물캐기>에서 내 어린 날 우리 어머니와 고모와 여동생들을

 본다. 지난 시대를 읽는다. 이 그림, 진정으로 읽은 분 시방 얼마나 될까?

이참에 연달아 생각나는 것.

 

지난 3월 14일 조선일보 발언대 기사 “봄철 자생식물을 위협하는 네 그룹 -고려대 명예교수 박권우” 가 내

무릎을 치게 했다. 그 기사는 자연에 관심 있는 분.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의 박수를 받게 했고.

가슴 뜨끔한 분도 있었으리라. 글쓴이는 먼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 했으나. 우리는 눈으로

 봐왔고 염려해온 현장들이다.

“봄철 자생식물 위협하는 네 그룹” 소위 위협 4족(四族)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 제 1족. 등산족 –버스

 대절해서 산채 있는 깊은 골짜기까지 가서 높은 산 두릅 등의 새순을 모조리 망치는 족. 제 2족- 카메라족,

야생화를 너무 사랑해서 특산 희귀 야생화 있는 곳을 속속들이 찾아가서, 단독 특종기사 내듯이 자기만

찍어 귀중 희귀성 사진에 희열하고 다음 사람들은 못 보게 아예 터도 없애는 과잉 맹신 사랑 족. 제 3족

–오로지 몸보신 위해. 매스컴이 더 부채질. 무슨 난치병이 무슨 약초를 먹고 완치 됐다는 소문을 퍼트려

그야말로 결사적인 약초꾼들. 그리고 제 4족- 화창한 봄날 모처럼 아들 딸 동반하여 야외나들이 나와서

새싹이 파릇파릇 피는 밭이나 길가 공원 한 귀퉁이에서 냉이 쑥 한줌 캐서 저녁 식탁에서 뒨장찌게. 쑥국

 한보시기 만들어 봄을 즐기는 것은 누가 뭐라 말할 수 없다. 내가 이따금 목격하는 장면. 공원 안 여기저기

 새 움돋는 화살나무 새순. 다래나무 홑잎나무 순을, 그리고 전시용으로 심은 명이. 달래. 지장보살(풀솜대)

등등을 사정없이 훑어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넣어가는 무자비 가족들 이들이 바로 4족이다. 이 4족속들을

어디 공재 선생의 그림에 나오는 <나물캐기>와 비교나 될 말인가? 3족 아닌 4족을 멸한다는 말을 새로

만들면 어떨까 한다.

 

<숲과 인문학> 이 책은 이미 소설을 두 권이나 낸 작가 김담이 대학을 나오고 얼마간 경기 성남 등지에서

도시생활을 하다가 강원도 민통선이 가까운 곳 그의 고향으로 귀농도 귀촌도 아닌 귀산. 숲속으로 들어 간

 후 2007년 가을부터 2012년 가을 사이, 고향 옛집에 숲과 함께 살면서 자연이 연출하는 정겨운 모습과

자연의 청징한 소리. 작가 자신의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연필 보드랍게 깎아서 또박또박. 조근조근

진솔하게 적어나간 일기 같은 수필. 수필 같은 일기, 백여 꼭지를 적은 책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자연을

대하는 그의 마음씀씀이와 태도에 경의를 표하게 되면 아울러 의문도 생겼다.

먼저. 저자의 자연에 대한 마음의 자세다. 계절 따라 하루의 시간 따라 그가 산책하는 곳. 눈길 가는 그 곳의

작은 풀한 포기 꽃 한 송이 열매 한 개. 키 작은 나무 키 큰 나무. 오래된 나무 젊거나 어린 나무. 그리고

멧돼지새끼, 고라니, 벌, 산새, 들새. 곤충들을 보며 느끼는 사랑과 경이며 빗물. 바람소리 개울가 물소리며

심지어는 멀리 사격장에서 들리는 대포 소리에도 느낌을 가지고 있는 감성을 본다. 그런 것들을 아주

정교하게 책속에 적어 넣고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의 이 작가가 어찌면 그렇게 향토색 짙은 언어에

밝은지 그저 연신 놀랄 뿐이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오래전 농경시대 우리 소상들이나 일상에서 흔히

씀직한 비유와 격언을 적절히 적당히 잘 쓰고 있다는 감탄과 아마 이 책속에 나오는 속담만 모아도 작은

속담사전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구사 하는 수많은 낯선 단어들은

한개 한개는 금세 쉽게 이해되지 않으나 한 문장을 읽은 후에는 아하 그런 뜻이구나 하는 이가가 되는

말들이며 또 그런 현상들이 신통하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생경하게 느끼는 그런

단어들은 우리 윗대 사람들이 농촌 산촌 삶의 현장에서 흔히 쓰던 말이기에 그 뿌리, 그런 정서의

DNA가 오늘의 내 몸 안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도 산속 숲속 생활이니 어쩔 수 없이 숲속의 식물 버섯 들을 채취하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

말한 것같이 그런 마구잡이는 절대 아니다. 꽃을 풀을 어린 동물을 만나만 정겹게 인사한고 어쩔 수 없이

채취할 때는 예를 다하고 아주 어린 것은 남기고 보호하고 다음에 그들의 상황이 어떤 가을 관할하고 하는

식이니 이런 게 진정한 자연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책 종이가 빤짝이는 고급종이가 아니라 그저 갱지에 가까운 수수한 종이에 박힌 재질에다, 잘

넘어가는 내용이기에 제법 큰 부피. 438쪽 짜리 이 책은 내가 전체의 삼분의 일 정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저자의 성인 뭣인지 몰랐다. 김담. 이름자체가 성의 명확성이 모호했지만 글의 맥 한줄 한 꼭지가 어느

때는 더 없이 힘차고 과감한 표현이 있었고 어느 장면에서는 너무나 예리하고 섬세해서 나는 확실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남성, 여성이란 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저자 같이 자연에 젖어 살면,

자연에 동화내지 적응하며 살면 옛날 사람들이 말하는 선인(仙人)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러 그렇게 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분명 저자는 여성이며 연로하신 두 부모님과 동생, 이렇게 네 분이 산속 숲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뒤쪽 편에서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난날 내가 폭풍노도식의 탐독 과식을 할 때의 기억, 루소의 <외로는 산책자의 몽상>

이라는 책과 숲의 철학자 소로우가 쓴 <월든>의 몇 장면들이 흐릿하게나마 겹쳐 떠오르고 있었다.

말로만 아니라, 머릿속으로만 아니라 몸 전체로 가슴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분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마음과

자세를 읽기 바란다. 내 능력으로는 이 책 이야기 할 힘이 부족하다. 거듭 이봄에 내가 <심봤다>고 외치고픈

책이 바로 <숲의 인문학>이다.

사족) 내가 1993년 봄 주제넘게 또는 난 채 하면서 정리 해본 글 <야생초화 감상 지남(십계명)을 첨부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주인 없이 떠도는 것 같다.

 

 

** 야생화 감상 십계명(지남) **

 

1. 겸손해라. 무릎을 꿇고 자기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기도하는 자세로 봐야 바로 보인다.

2. 이 작은 풀과 풀꽃에서 대지의 미소를 가슴으로 발견하도록

       경건 하라!

3. 이 작은 풀과 풀꽃에서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도록 진지 하라!

4. 지금 내 눈앞의 한 포기 야생화를 보기 위하여 무의식중에

      다른 생명을 짓밟지 마라.

     (네일크로버= “행운”을 찾기 위해 세잎크로버 “행복”을 짓밟지 말라)

5. 이 식물(야생초) 이름 속에 이 식물의 모든 특징이 숨어있다. 이름 풀 이를 잘해 오래 동 안 가슴과 머릿속에 남게 하라.

6. 이 식물의 현재의 모습과 색, 향에 이 식물로서는 최선의 삶(진화)의 여정이 깃들어 있음을 유의하라.

7. 이 식물의 크기. 개화시기. 색, 향, 그리고 모양 등을 풀어봐서

이 식물의 생존 전략을 파악하라.

8. 돋보기와 망원경을 통해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이로움도

     함께 느껴라.

9. 야생화(초)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문화유산도.)

    행여 모셔가서 옆에 가까이 두고 감상하려는 생각은 삼가라.

     가져가 심어 봐도 거의 못 살린다.

10. 가능한 한 혼자 가서 조용히 감상하라. 수십 명 차로 함께 가기보다 개인적 이거나 두어 명 씩

     가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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