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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작가가 본 조선 역사

碧空 2013. 5. 20. 11:14

강만길 교수가 “우리나라의 갈 길을 역사의 교훈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함에 따라 조선시대 역사를

30년 넘게 천착해온 신봉승(80·사진) 작가를 만났다. 그는 1980년대에 조선왕조 500년사를 7년9개월간

 TV 드라마로 극화하면서 역사를 안방으로 끌어들인 인물이다. 조선을 이끈 24명의 왕과 신료들의

행적을 촘촘히 꿰고 있는 신 작가에게 지금의 대통령과 정부가 배워야 할 교훈을 들어봤다,

신 작가는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역사공부를 시켜야 한다. 역사의 행간을 이해해야 오늘의 현실과

비교하며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연구하게 된 배경은.
“나이 50에 사극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 월탄 박종화의 『금삼의 피』를

읽었다. 정사 아닌 야사에 바탕한 소설임을 알게 됐다.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논문을 썼다.

『단종애사』를 『연려실기술』 『조선왕조실록』과 조목조목 비교한 논문이다. 이를 제출하자

은사 황순원 선생이 은밀히 불러 ‘어디까지가 사실이냐’고 물었다. ‘전부 사실이다’라고 대답하니

그분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논문은 통과시켜 주겠지만 발표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 뒤로 나는

정사(正史)의 대중화를 목표로 30년간 노력을 거듭해 왔다.”

-조선사에서 우리 대통령이 배워야 할 교훈은.
“우선 사면 문제다. 조선 왕은 왕위에 오른 뒤 죄인들을 사면하며 새 시대를 선언했다. 부모를 죽인 흉악범이

 아니면 모든 죄인을 방면해 감옥을 비웠다. 지금처럼 물러나는 대통령이 퇴임 직전 측근들을 사면하는 건

잘못된 거다. 다음은 인사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을 장관급으로 한 건 (청와대가) 정부를 넘보겠다는

 뜻이니 옳지 않다. 비서실장은 차관급 정도여야 한다. 조선 왕의 비서실장은 승정원 도승지였다. 3급, 즉 지금의

국장급이다. 지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의 임무는 선비들이 올린 상소문을 가감 없이 왕에게 전하는 것이다.

임금은 반드시 답을 줘야 했다. 대통령도 이처럼 국민과 소통을 해야 한다. 청와대에 올라온 건의를 해당 부처로

이첩해버리는 건 직무유기다. 일례로 이명박정부 시절 ‘한자 문화 추진위원회’의 진태하 교수가 역대 총리 21명과

교육부 장관 41명의 서명을 받아 ‘초등학교에서도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건의문을 청와대에 보냈다. 5년간

답이 없었다. 이래선 나라가 안 된다.”

-박근혜정부에선 문제가 터져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만 대통령 이래 64년 동안 배짱 있게 사표를 낸 장관을 본 일이 없다. 조선시대엔 가뭄이 들면 판서(장관)가

가장 먼저 사표를 냈다. 오리 이원익 선생은 64차례나 사표를 썼다. 책임질 줄 알고 배짱 있는 인사가 나라를 끌고

가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부하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중종 때 강원도에 수해가 났다. 중종이 그 원인을 묻자 이자건이란 신하는 ‘임금이 성심을 다해 정치를 하지 않아

 하느님이 노한 것’이라 답했다. 중종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묻자 이자건은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라’고

대답했다. 중종이 ‘나는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이자건은 ‘군자는 어질고 점잖아 어디 있는지

모르고, 소인은 말이 많고 나댄다. 전하 아래 있는 사람은 전부 소인’이라 답했다고 한다.”

-신·구세대 갈등도 심각하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480년 전 중종 시절 36세의 조광조는 왕에게 ‘젊은 훈신이 옳다고 하면 나이 든 간관이 틀렸다고 하고, 젊은

간관이 옳다고 하면 나이 든 훈신이 그르다고 한다. 신하 사이에 연령 격차가 크면 중구난방이 된다’고 말했다.

임금이 ‘어떻게 하면 되겠나’고 묻자 조광조는 ‘나이 든 이는 젊은이를 자식처럼, 젊은이는 나이 든 이를

어버이처럼 여기면 된다’고 답했다. 원로 보수는 486을 자식처럼, 486은 원로 보수를 어버이처럼 여겨야 한다.”

-대통령이 국제정세를 읽는 안목도 중요한데.
“16세기 일본은 표류해온 포르투갈인에게 조총 제조술을 배우고 세계를 이해했다. 또 명치유신 뒤 내전

상황에서도 장·차관급 고위 인사와 유학생 등 150명을 시찰단으로 해외에 내보냈다. 이들은 1년 반 동안

미국과 영국·독일을 둘러보고 1800권에 달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다.

반면 17세기 조선은 총포 기술자였던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 37명이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기술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남자 기생 노릇을 시켰다. 그만큼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이런 탓에 임진왜란·병자호란·

정유재란을 당했고, 일본에 36년간 굴욕적인 식민지배를 받았다. 지금도 우리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너무 오래 간다.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표준 시간대도 문제다. 일본 도쿄 시간대에 맞춰져 있다.

왜 그래야 하나? 한국은 도쿄보다 30분 늦다. 이젠 우리 시간대를 가질 때가 됐다.”

-조선 왕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고 하는데.
“지금 고시는 전부 일본 제도다. 이젠 없어져야 한다. 9급 시험 하나만 놔두고,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조선시대 임금은 과거에 합격한 엘리트 20여 명과 하루에 네 번씩 질의응답 시간(경연)을

갖고 공부했다. 실력 있는 신하만 경연관에 뽑혔다. 경연관을 ‘정부의 꽃’이라고 한 이유다. 박 대통령도

 엘리트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조선시대 인재 발탁에서 배울 점이 있나.
“조선시대는 전랑(銓郞)을 둬 인재를 발탁했다. 전랑은 관직의 꽃으로, 요즘의 안전행정부 인사과장 격이다.

전랑이 판서 등 정승급 인사들을 추천했다. 전랑이 직접 판서의 임기를 정하고, 후임자도 전랑이 정해 인사의

객관성을 유지했다. 정승들은 거의 100% 전랑이나 경연관을 거친 인물 가운데 발탁됐다. 이에 비춰보면

지금의 인사제도엔 문제가 많다.”

-조선시대 교육에서 배울 점은.
“지금 초등학교 국어책은 ‘영희야, 철수야 놀자’로 시작한다. 조선시대엔 다섯 살배기들이 글은 쓰지 못했어도

‘하늘은 높고, 땅은 누르고, 우주는 거칠고 넓도다’(천자문 첫 구절)를 외웠다. 차원이 달랐다. 또 요즘 학교는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지 않는다. 강인한 정신을 길러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인간이 되길 바라나?

또 한국 사람 인성에 맞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일본 학교에선 학생들이

수업 전에 휴대전화를 통에 담아놓고 하굣길에 찾아간다. 이렇게 교육 개혁을 하려면 15년은 걸린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교육 개혁에 빨리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 잘못된 걸 하나라도 없애는 게 권력에 오른 사람이 갈 길이다. 낙하산 인사와 정경유착,

전관예우, 이런 것이 없어져야 (대통령이 말한) 공정한 사회가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냥 바르게 사는 것이다. 난 호텔 헬스클럽 30년 이용권을 받은 게 있다. 한번도 이용해 본 일이 없다.

건전한 일상이 있으면 건강한 것이다. 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저놈 어떻게 때려잡을까’ 궁리하며 살면

건강하지 못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