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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회상

碧空 2011. 11. 19. 18:24

 

*노년의 회상*

 

석암:김효기

 

한해 두해 나이가 들어가며 내 나이가 벌써 82세라니 내 스스로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으며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회고 하건대 40여 년의 교직 생활과 20여 년의 보령문화 발전에 미력 이나마 기여 하겠다고 노력을 해왔던 일들이 회상된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허무하고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도 분명치 않다. 그 오랜 세월을

허송한 것만 같아 참으로 후회 스럽다. 성현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평생 과제로 삼아 노력 해 왔어야 함에도 성취하려는 정성이

부족 했음을 크게 후회 하고 있다.

 

여기 에서 떠오르는 "이율곡 선생님의 격몽요결(擎蒙要訣) 첫째 장인 입지장의 첫 구절에 "초학 선 후입지 필이 성인 자기 불가

유일호 자소퇴" 이다. 처음 학문을 시작할 때 먼저 뜻을 세우고 즉 입지하고 필이 성인(聖人)이 될 것을 자기(自期) 스스로 기약하고

조금도 불가 하다고 스스로 물러서지 말라는 강한 교훈이다.

 

노인은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지고 매사 의욕이 저하 됐으므로 살아온 인생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사회 봉사 만이 현명한 길이라 본다.

인제 와서는 조그마한 일 이라도 노력 해서 이룬다면 그 보람은 크게 느끼게 된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자기 건강을 지키는 일 들 이라고

본다. 여력이 있으면 기록을 남긴다던가 자료 수집과 정리하여 후대에 전해주는 것도 더욱 좋은 일 이라 본다.

 

날로 쇠퇴해가는 체력 보강이 절실하다. 늘 몸이 불편한 아내의 손을 잡고 홍제천 산책로를 거닐 때 즐거웠다. 노인 운동으로 적당한

 "게이트볼" 구장에 종종 나가기도 한다. 홍제천 산책길은 왕복 2km 정도이니 노인들 에게는 적합한 운동이며 여러 가지 운동 기구를 이용한

운동으로 몸도 가볍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갈 때의 마음은 흐뭇 하기만 하다.

 

홍제천 동쪽에는 인왕산의 아름다운 암벽과 주변의 우거진 숲의 조화와 북쪽에는 북한산이 장엄한 모습이 내 마음의 스승 같다, 첫 번째

향로봉을 시작하여 애기봉, 대남문, 대동문, 쪽도리봉, 장군봉, 서산대사봉, 백운대 최고봉 까지 장엄하고 아름답게 뵈고 서쪽으로 내려오며

구릉을 따라 홍은벽산아파트 뒷산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아담한 칠량공원이 있다. 바로 아파트 뒤편에 있는 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자주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 첫날 화단 나무 전지를 하며 "좋은 아침 되시기를 바랍니다." 라는 의외의 인사를 받고 바라보니 키가

크고 인물이 훤한 호감 가는 분이었다. 그 후 자주 만나고 대화도 나누었다.

 

영관급 군 제대 후 새마을 사업으로 서대문 구청에서 만든 공원 이라 한다. 아름다운 환경과 각종 운동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여기에 바로

최경환 전 서대문구의원의 공이 컸다고 한다,

 

날씨가 차가운 후에는 아침 등산을 오후 4시경 석양에 포근한 햇빛을 즐기며 정상의 정자에서의 조망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 후에는 홍제천 산책로의 소공원에서 운동하고 교회(敎會)에서 사귄 교우와의 대화로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거나 지난 옛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껴본다. 교우 황선용은 원 언론인으로 한학과 서예에도 일가견을 가진 분으로 취미가

같고 한 시대에 살던 공감대를 가진 점으로 아주 자별하여 거의 매일 같이 만나고 있다. 더구나 이메일 을 받고 그 내용으로 대화로

삼고 인생의 말로에 좋은 벗을 만나서 뜻이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최근 날씨가 차가워 져서는

홍은 나눔 북카페 에서의 대화와 컴퓨터, 독서 까지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졌다.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홍성교회에서 주일날에는 예배에 참석하며 목요일에는 장수대학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고 하건대 보령 도서관 여성 독서회 활동이 꾸준히 이어와서 1999년 여성문학 보령 예지회로 발전하여 창간호 "한여울"을 냈다 그 가운데

고 백난화 여사의 활동이 떠올리게 되며 하늘에서도 든든한 후원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보령 여성문학의 수준은 전국적 으로도 중 상위권을

지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970년대에도 보령마을 문고 협의회는 전국 상위권 실적을 낸 일도 있다. 여기에서 회상되는 일은 진학을 못하여 학구열에 불타는 졸업생들과

주민의 협력으로 마을문고 협의회 회장에 ‘윤순자’ 여사와 ‘임문순’ 교수와 함께 활동했던 일 들이 생각된다. 이 모든 것과 선배 문인들의

도움으로 문학 활동이 타 지역에 비해서 활발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보령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훌륭한 출향 문인들이 많으며 고향 문학에 관심이 컸고 특히 고 이문구 선배는 꾸준한 노력으로 1991년 2월에

한내문학 을 내무로서 그 영향이 컸다. 그 후 여러 문학 단체가 나오게 됐으며 예지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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