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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농민을 죽이는가

碧空 2010. 7. 16. 23:30

계급혁명을 부추긴 카를 마르크스를 가장 잔혹한 경제학자라고 여기는 것은 오해다. 토머스 맬서스와 비교하면 양반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는 맬더스의 이론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처방전이다. 기근과 빈곤을 피하려면 ‘도덕적 억제’가 필요하지만, 맬서스는 그 가능성을 스스로 믿지 않았다. 그는『인구론』에서 끔찍한 대안을 제시했다. “도시의 골목을 전염병이 창궐하게 더 좁게 만들어야 한다. 마을은 썩은 호수 옆에 세워야 한다. 새로운 의술(醫術) 발전도 막아야 한다”고…. 한마디로 사람이 더 많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쌀이 남아돌아 골치다. 올해 국내 쌀 재고량은 140만t. 적정 재고량의 두 배다. 창고가 꽉 차 쌀 가마니가 바깥에서 썩고 있다. 지난주 농림수산식품부는 기발한 카드를 빼들었다. 5년간 묵은 쌀을 가축 사료로 쓰겠다는 것이다. 국민 정서에도 거북하다. 당연히 “결식아동이 60만 명인 마당에…”라는 비난이 나온다. 민주당은 “굶어 죽는 북한 주민을 외면한 잔인한 발상”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아직 천안함 희생자 무덤에 풀도 안 났다. 대북 쌀 지원은 아무래도 성급한 느낌이다.

만성적으로 쌀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는 한 근본 처방은 있을 수 없다. 요즘 거론되는 쌀 조기 관세화도 대증요법일 뿐이다. 농민단체와 농촌 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대는 완고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난감한 표정이다. “솔직히 시간과의 싸움밖에 없다.” 농림부 공무원들이 사석에서 털어놓는 고백이다. 이들의 시선은 320만 명의 농업인구 중 70대 이상이 30%, 60대가 35%라는 통계수치를 향해 있다. 이들이 농사에서 손을 떼야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도태(淘汰)지, 결국 돌아가셔야 한다는 뜻이다. 맬서스가 환생한 느낌이다.

우리 헌법 121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을 못 박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과 함께 손대기 어려운 성역이다. 과연 경자유전이 농민을 보호하는 장치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논을 내놓으면 팔리는가? 안 팔린다. 도시와 기업에 돈이 몰려 있는데 누가 사겠는가. 나이 든 농민들이 제값에 농지를 팔고 출구전략을 구사할 마지막 기회가 막혀 버린 것이다. 여기에다 노무현 정부가 외지인 소유의 농지에 양도세 60%를 중과한 것도 이중의 족쇄다. 농지 구입 수요는 씨가 말랐다. 부동산 투기 막으려다 농민의 목을 좨버린 것이다.

농지를 못 팔면 도회지의 자식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 농지의 40%가 비(非)농민 소유고, 소작농지의 약 80%가 불법임대차 계약을 맺는 현실은 여기서 잉태됐다. 2년 전 외지인들이 쌀 직불금을 가로챈다고 난리를 피운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률이 범법자를 양산한 셈이다. 진정 농민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오히려 헌법을 고치고, 양도세 중과를 없애야 수요가 늘고 농지 값이 오른다. 농지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농민들 스스로 시위를 벌여야 하지 않을까?

똑같은 문제로 고민해온 일본은 경자유전 원칙을 포기했다. 농지법을 개정해 농민과 농업법인은 물론 기업들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있다. 농업 생산성을 올리고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어쩔 수 없다. 쌀 과잉을 막고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려면 대규모 기업농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일본은 경자유전 원칙부터 폐기처분했다. 이미 시범 지역에서 식품업체들이 휴경지를 활용해 생산-집하-소비의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해 성과를 거둔 것도 일본 정부의 자신감을 키웠다.

대책 없이 농민이 도태되기만 기다리는 농정(農政). 뙤약볕 아래서 개나 돼지에게 먹이려 벼를 키우는 농민. 기다리다 못해 외국 농지를 수천만 평씩 사들이는 국내 기업들. 모두 우리 농업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다가오는데 아직 발상을 전환할 기미는 없다. 자꾸 200년 전 끔찍한 맬서스 이론이 우리 농촌을 짓누르는 악몽을 꾼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