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祖 僧 燦 大 師
승찬(僧燦)대사는 처사로서 혜가대사를 참방하여 문답 끝에 깨달음을 얻고 출가했다.
2년 간 법을 배우고 스승의 지시에 따라 서주(舒州) 사공산(思空山)에 은거하여 30여년만에 도신(道信)을 만나 법을 전하고 수(隋)나라 대업(大業) 3년 서기 560년에 입적하셨다.
三조 승찬대사는 그 출생지와 연령을 자세하게 알 수 없는 분으로서 언제부터인가 난치병을 얻어 고생하던 몸으로 二조를 만나 법을 전해 받아서 東土의 제三조가 되신 분이다.
당시 중국의 천하는 진(陳)과 후주(後周)간의 전쟁 시 였는데 후주의 무제는 도교(道敎)와 불교를 크게 미워하여 일대 법란(法難)을 당할 시대였다.
승려들을 추방하여 환속시키고 사원은 파괴되기 일쑤였다.
三조 승찬대사는 스승 二조 혜가대사를 모시고 지시에 따라 피난하였고 수나라가 天下를 통일하여 평화를 찾았으나 二조는 불행히도 법란으로 처형을 받게 되셨다.
이와같은 법란속에 三조 승찬대사는 四조 도신(道信)을 만나 법맥을 잇게하였다.(서기 593년 隋開皇12年)
三조가 법을 전할 법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80 노객승이 찾아 왔다.
三조께서 '어떻게 왔소?' 하니 '법을 받으러 왔소이다' 하므로
'그럼 한번 일러보시오' 하시자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소이다' 하므로
깜짝 놀라서 '다시 일러보시오' 하시니
'고양이 밥그릇 마저 깨어졌소이다' 하자
'그대에게 법을 전하고자 하나 그대의 몸이 늙어 나 보다 먼저 몸을 버릴 것이니 몸을 바꿔서 다시 오시오' 하니
도신이 산을 내려가기 전에 절 뜰 앞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산아래 마을 가까이 이르렀을 때 빨래하는 처녀를 만나게 되어 그녀에게
'내가 너의 집에 하룻밤 묵고자 하니 허락하겠는가?' 하자
처녀가 '예'하자
그 자리에서 나무에 기대 앉은 체 천화한 뒤 그 처녀의 몸에 태기가 있어 낳으니 이 아이가 바로 그라,
나이 16세가 되어 황매산 三조를 다시 찾아 자기가 그때 노객승이였음을 심어놓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게송을 읊으니 그가 곧 그임을 알고 법을 전했다는 유명한 '서식묘아반'이라는 화두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수나라 제二대 양제(煬帝) 대업(大業)2년 서기 606년 10월 15일에 입적했으며, 100여년 후 서기 720년 당나라 현종황제(玄宗皇帝)는 경지선사(鏡智禪師)라는 시호를 추증하게 되었다.
三조 승찬대사가 찬술한 신심명(信心銘)은 전편 146구에 580자로 禪理를 확연하게 설파한 게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