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를 찌른 칼 * 시해 당시, 명성황후를 절명시킨 칼로 추정 * 신사 관계자 " 이번 공개는 극히 이례적인 일 " '여우사냥' 조선공사 미우라와 일본인 자객들에 의해 자행된 명성황후 암살작전의 시 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본인 자객들은 왕비의 거처인 건청궁(乾淸宮)에 난입, 명성황후의 암살에 성공하고 유해(遺骸)를 불태웠다. 110년전의 그날, 명성황후의 [ 일본인 자객 토오가쯔아키(藤勝顯), 신사에 칼 기증 ] [ 쿠시다 신사 정문 ] [ 쿠시다 신사 내부. 신전(神殿)의 모습 ] 쿠시다 신사는 후쿠오카 시내에 위치해 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이곳에 "이 칼을 공개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쿠시다 신사의 책임자 아베 켄노스케(阿部憲之介) 궁사는 상기된 얼굴로 일행을 라고 적혀 있었다. 칼주인이 시해 당일 작전명 '여우사냥'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것이라고 한다. 궁사는 잠시동안의 정적을 깨며 이 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 칼은 히젠도라고 불립니다. 16세기 에도시대 다다요시(忠吉)란 장인에 의해 [ 칼을 빼고 있는 궁사의 모습 ] 칼집에 새겨 놓은 글씨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찌르다. '쿠시다 신사측 기증관련 서류. 좌측상단에 왕비를 이 칼로 베었다란 기록, 그러나 기증 당시의 정황을 기록한 문서에는 모든 것이 다 적혀 있었다. 토오가 토오가 정말 명성황후를 절명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왕비의 궁사는 그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긴 설명을 늘어 놓을 수록 난처해질 이곳은 신사입니다. 이 지방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곳이지요. 히젠도는 히젠도: 한 눈에 명검임을 알 수 있다. 사진속의 칼에 방안의 병풍이 반사되고 있다 * 토오가쯔아키(藤勝顯)는 누구인가? * 토오 가쯔아끼(藤勝顯)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왕비의 침전에 난입한 세사람 그리고 또 하나의 주장에 의하면 "나카무라 다테오가 곤녕합(坤寧閤)에 숨어 있던 정리하자면 토오 가쯔아끼는 왕비의 침실로 최조 난입한 3사람 중 하나였고, [ 다시는 이 칼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 명성황후를 절명시킨 칼끝 . 매우 예리하게 연마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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