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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사업

[스크랩] 국가통신망의 통합관리

碧空 2008. 7. 21. 18:10

 

정보통신 사이버전시관 (http://20c.itfind.or.kr/)의

전기통신 100년사에서

 

국가통산망의 통합관리와

자가전기통신설비중 전력통신을 발췌한 사항입니다.

 

 

제 6절 국가통신망의 통합관리

 

  국가통신자원의 경제적인 활용과 통신 시스템의 체계화를 위하여
각 기관별로 분산 운용 중이던 국가기간통신망을 국가전기통신공사에
통합 운용 한다는 방침 하에 1982년부터 본격적인 통합작업에 착수하였다.

 
국가기간통신망을 통합하게 된 것은

종래에는 각 기관별로 고유업무 수행에 필요한 통신망을

분산 설치함으로써 시설과 운용의 중복으로

국가통신자원의 비경제성이 노출되었으며,

 

무선시설의 경우 동일 고지에 수개 기관의 중계소가 설치되어
국가적 입장에서 볼 때 국소.인원 및 시설의 낭비를 초래하였고,

 

안보적 차원에서도 보안상 취약점을 노출하게 되며,
국토 미관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전기통신공사로 하여금 이를 운영케 함으로써
통신자원의 경제적인 활용은 물론 국가통신망과 공중통신망과의
균형적 발전으로 전체 국가통신망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통신보안도의 향상으로 국가안보 기능을 강화하고
국토 경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러한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1983년에 제정된 전기통신기본법에는

국가통신망의 통합 운영이 필요한 경우

체신부가 국가통신조정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추진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명시하였다.

 

 

그 동안의 추진 실적을 보면,

 

1982년에는 건설부 등 5개 기관의 무선통신망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인수 운영했고,


 

1983년도에는 기타 기관의 무선통신망을 통합하였다.

 

 

1984년에는 내무부 등 2개 기관의 유선통신망을 인수하는 한편
KBS와 MBC의 방송송신중계소를 동 공사가 수탁 운영하였다.

 

 

 

1. 국가기간통신망의 통합

 

  (1) 무선통신망의 통합

 

    통신망의 통합작업은 1975년부터 그 필요성이 논의되었고, 
1978년에는 내무부의 마이크로웨이브 간선통신망 66회선이
통합되기도 하였으나 큰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1981년 2월 13일의 국무회의와

동년 5월 1일의 체신부 업무보고에 이어

11월 3일의 제 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보고시에

 

'고지대 마이크로웨이브 중계소의 경우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각 부처에서 별도의 중계소를 운용하고 있어

 예산.인력.경비 등 여러 측면에서 낭비가 많으므로

기간통신망을 통합 운용하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무선통신망의 통합작업이 본격화되었다.

 

1982년 1월 체신부는 선 운용통합, 후 시설조정통합의 방침을 확정하고,

각 중계소에 대한 현지 합동조사를 완료한 후

 

동년 8월 31일 건설부와 대검찰청 마이크로웨이브 통신망에 대한
무선통신망통합협정의 체결을 시작으로

1982년 9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건설부.대검찰청.철도청.내무부 및
한국전력공사 등 5개 기관에 대한 46개 중계소를
한국전기통신공사가 통합 운용하게 되었다.

 

 

또한 1983년 12월 15일에는 국방부 소관의 마이크로웨이브 시설이
추가 통합됨으로써 총 90개 중계소 396억 8천 2백만원 상당의
통신시설이 통합되고 운용요원 206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이속되었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2년 9월부터 1983년 12월 중에
운용 통합된 6개 기관의 90개 중계소의 시설을 통합하기 위하여

 

동일 고지 중계소 중 시설이 간단하고 경로상 문제가 없는 구간은
단일국소로 통합하고,

 

경로.시설 등에 문제가 있는 중계소는

인접 중계소에 경보시설을 설치, 무인운용을 하며

통합이 불가능한 중계소는 존치 시키는 등

 

시설의 조정통합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공사는 1983년 12개 중계소,

1984년에 29개 중계소,
1985년에 17개 중계소 등

총 58개 중계소의 시설을 완전히 통합하였다.


 

 

(2) 유선통신망의 통합

 

  무선통신망의 통합 결과 경제성.효율성 및 보안성 등의 면에서
그 성과가 인정됨에 따라 체신부는 각 기관의 유선통신망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하여금 통합하도록 방침을 정하고

대상시설의 합동 실사와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1984년 7월 내무부.국방부의 유선통신망을 인수 운용케하였다.

 

통합된 시설은 나선로가 525km, 일반케이블이 1,344km
동축케이블이 243km로 164구간의 2,112km였다.

 

동 공사는 장기적인 통신망계획 및 국가기간통신망통합 기본방침에 따라
부처별 유선통신회선을 동 공사 시설에 수용 공급하고
필수 불가결한 시설만 유지하여 운용의 합리화를 기해 나갈 계획이다.

 

 

2. 방송통신망의 통합

  종래 방송통신망은 방송국내의 연주시설과 방송송신소 및 중계소는
KBS와 MBC의 각 방송사가 관리하고

 

방송국과 방송.송신중계소 간의 전송로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운용함으로써 동일 고지 또는 동일 지역 내에
공사와 각 방송국별로 송신소 또는 중계소를 중복 설치하여 왔다.

 

이에 체신부는 1983년 8월 25일 문화공보부와 협의하여

방송통신망을 일원화하고
동일 고지에 설치된 방송송신시설을 통합하기로 하고

관계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방송통신망의 방대함 등을 고려하여

우선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방송송신중계소를 수탁 운영함으로써

통합을 위한 과도기적 형태를 먼저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84년 10월 30일 방송송신, 중계소 위탁운영협정서가
동 공사와 KBS.MBC간에 체결되었고

1984년 12월 1일부터 공사가 수탁 운영을 개시하였다.

 

위탁운영협정의 주요 내용을 보면,
방송사(KBS.MBC)는 기존 및 앞으로 신설될 송신소.중계소의 운영을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위탁하고

 

위탁운영의 범위.절차.운영비 등은 공사와 방송사와의 협정에 의하되,
운영비는 방송사의 자영경비 수준 이하로 조정하며,

방송송신.중계소에 근무하는 요원은 공사의 직원으로 임명하고
방송사 재직시의 급여수준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 등이었다.

 

 

또한 위탁대상시설은

방송송신소 및 중계소(AM.FM.TV), 장거리 전송시설(마이크로웨이브 등),

비상송신시설(비상송신 차량.비축자재 등)로 정하는 것 등이다.

 

 

1984년 12월 1일에 위탁운영을 하게 된 방송.송신중계소는
KBS의 339개 지역의 466개 무선국,

MBC의 47개 지역에 58개 무선국 등
총합 386개 지역의 524개 무선국이었다.

 

 

한편,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시설의 통합 운영을 위하여

방송망관리본부를 설치하는 등 기구를 개편하는 한편

동시설의 운용요원 1,088명(KBS 731명, MBC 357명)을
공사의 직원으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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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력통신

 

  1961년 7월에 전기3사(조선전업·경성전기·남선전기)가

통합되어 한국전력이 탄생되자

만성적 전력기근을 해소하기 위한 전원개발계획이 착수되었다.

 

전자통신 분야도 회로기술과 부품개발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다중무선이 실용화되고

트랜지스터가 진공관에 대치되는 시기로서

 

한국전력내의 전력용 통신도 전화의 범주를 벗어나

각종 전력설비의 자동화 및 제어부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전력 창립 후 23년간

발전시설 용량은 36만kw에서 l,300만kw에 이르렀으며

 

전력통신부문도 기간 중 급전전화에서

전력계통 보호 및 원방감시제어에 이르기까지

전자응용기술을 구사하여 능률적 경영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이제 시대별 발전상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전력은 창립과 동시에 전기3사의 전력통신설비를

그대로 승계하였으나

 

남선전기의 독첨가전화망과

경성전기의 진공관식 초단파무선기 14대를 포함한

서울시내에 가설된 연피케이블이 고작이었으며,

 

 

조선전업은 단파무선기와 전력선반송전화 약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남선전기의 전력선반송 기자재를 인수받아

우선 한국전력의 체계에 적합한 통신망을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방 발전소·변전소의 전력선반송회선을

서울의 가장 큰 계통변전소인 수색에 집중,

 

여기에서 지중파 가공케이블에 의해

 을지로에 있는 본사에 연결하였으나

케이블의 잦은 도난과 고장으로 불통되는 일이 빈번하였다.

 

 

한편, 전원개발사업이 활발히 진척되면서

전력통신의 수요도 급증하여

회선 증설 및 계통 재편성이 불가피해지자

 

 

수색변전소의 전력급반송단말을 부평변전소로 옮겨

반송 손실을 줄이고

 

 

부평과 본사간을 마이크로웨이브로 연결하는 계획을 성안,

1964년 1월 드디어 개통됨으로써  미군용을 제외한다면

우리 나라 자가전용통신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또 1960년대 전반까지는

전력선전송전화가 전력용 통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컸으나

 

 

전송로로 사용하는 송전선이 전력수요 증가에 따른

변전소 건설로 T 또는 π로 분기되는 경우가 늘면서

전송손실과 잡음이 증가하여

더 이상 간선 통신방식으로 이용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장거리간선회선을

전송특성이 우수한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으로

변경 구성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1960년대 후반부터 측량 및 설계작업이 착수되었다.

 

 

그러나 전력선반송은 전력회사만의 고유설비로

오늘날에도 한국전력내 600여 단국이 발전소 상호간에

없어서는 안될 전력조작용 통신수단으로 쓰이고 있는데,

 

회로기술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성능도 월등히 좋아졌다.

 

전력선반송전화를 간단히 소개하면

 

송신측은 링(Ring)변조에 의한 반송파억압, 단측파대방식이며,

수신측은 압신기를 채택, 신호대 잡음비를 개선하고 있으며,

 

1회선형에서는 자동교환회로를 내장하여

5개 가입자가 공동으로 자동호출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매우 편리하다.

 

사용주파수는 법에 정한 50∼450kHz대로

출력은 1W 미만이며

음성대역은 0.3kHz∼2.3kHz로 음성대역외에 신호주파수가 있는데

 

2W에서 신호대 잡음비는 30dB로서

회선 품질은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다.

 

 

1960년대말부터 간선통신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다중무선망은

1970년대에 영남과 호남을 관통, 부산과 여수까지 구성되어

간선회선의 대부분이 마이크로웨이브화되었다.

 

그러나 방사형 계통만으로는

사고시 전 회선이 불통될 우려가 있어 환상망 구성이 절실했으나

 

통신망통합조정계획으로 자가통신망 시설이 어려워

부득이 체신부의 전용회선을 이용하여

전국을 크게 3개망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한국전력의 마이크로웨이브 송수신장비는

일본전기(NEC)제품으로 7GHz 로우 밴드(Low Band)를 사용하여

 

초창기의 주 예비시기(Hot-standby) 방식에서

1970년대에는 주파수분해(Frequency diversity)방식이

주종을 이루었고

 

변조출력관도 크라이스토론에서 현재는 전고체소자로 바뀌었다.

 

 

한편, 4차년도까지의 전파개발계획 달성으로

안정된 전력공급 능력을 확보하자

농어촌 전화사업이 시작되었으며

 

지방의 중소사업장에 필요한 전력통신으로

통신케이블이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한국전력이 창립된 후 낙후된 방식인 전화선 대신

통신케이블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전력선 첨가에 따른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자

특별한 규격으로 제작된 것이 PE절연 РVC피복 10,000V,

내압통신 케이블이었다.

 

송배전 전압계층의 단순화 방침에 따라

배전전압이 224V 직접접지방식으로 바뀌자

여기에 첨가된 통신케이블은 유도와 고장에

충분한 대비가 필요해졌으며

 

이에 따라 높은 내압과 차폐능력이 있는

전력통신용 케이블을 개발 사용하게 되었다.

 

l980년대에 들어 발전시설 용량이 1,000만ĸW를 초과한

한국전력은 단지 양적인 성장에 그친 것이 아니고

내면의 질적인 보완이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수력과 화력에만 의존하던 발전방식에 원자력을 도입했고,

 

대전력 저손실 송전을 위한 345kV 초고압 전송망이 건설되었으며

 

전화에만 의존하던 전력계통 운전업무를

컴퓨터에 의한 자동급배전(ALD. SCADА) 시스템으로 전환함으로써

선진국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전력용 통신분야도 통신전송부문과 전자응용부문으로 나뉘어

전력계통 운용과 경영개선에 각각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신전송 부문도

전화중계의 차원에서 정보 전송 영역으로 확대되어 감에 따라

전송특성을 개선하고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일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종래에는 음성대역이 협소하여

600보오밖에 데이터를 전송하지 못하던 전력선 반송전화를

광대역화함으로써 l,200보오까지 전송이 가능해졌으며

 

케이블의 선장이 길 때 일어나던 지연특성과 진폭 특성 불량을

해결하기 위해 케이블을 반송화함으로써

9,600보오까지 무난히 사용하고있다.

 

앞으로 고속. 다량의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전송망의 디지틀화와 광통신화가 필연적인 과제이다.

 

전자응용 부문에서는

전력계통보호 반송계전방식의 개선 방안을 강구,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전력선반송방식에서

 

광통신을 활용한 위상비교방식 또는 가청주파방식으로 바꾸어

늘어나는 전력계통 보호 수요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송전반 고장점 표정장치도

현행 전력선반송방식에서 별도 전용전송회선을 확보하여

표정확도를 높여야 하겠으며

 

도심의 배전선 개폐조작을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배전자동화는 물론, 경상능률 향상에 도움이 될 사무자동화 분야도 1980년대에 마무리지어야 할 일이다.

 

 

독첨가선전화시대에서 광통신시대까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전력과 통신의 불가분한 관계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양질의 전력을 부단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전자통신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력 창립 후 20년간 전력용 통신설비를 살펴 보면

지수선 1961년을 기준으로 볼 때

통신케이블은 83배, 단파무선은 70배의 신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양적 증가보다는

설비의 질적 수준이 괄목할 정도로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회로내 능동소자가 고체, 집적화됨으로써

수명의 반영구화 및 소형경량화되었으며

 

컴퓨터의 보편화로 전자응용분야가 전 산업 부문에 확산되어

자동화가 촉진되고 있는 현실이다.

 

 

다가오는 정보화시대에

전력사업의 경영 합리화와 능률 향상을 위해서는

 

전력용 전자통신의 신기술을 도입 축적하고 응용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출처 : 전력통신회
글쓴이 : 박근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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