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는 아직도 우리에게 드러난 것 보다
숨겨진 것이 훨씬 많습니다
모처럼 주어진 기회에 새로운 가야문화를 찾아서
둘러 보았습니다
가야사는 문자가 없었기에 발굴된유물과 삼국사기
등에서 보이는가야제국에 대한 기록은
신화 형태의 기록일 뿐 입니다.
김해 금관가야야 )
수로왕과 결혼한 인도의 야유타국에서 배를 타고온
허 왕후릉 입니다
허 왕후가 배를 타고 올때 거친 파도를 가라 앉히기 위해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
(구지봉)
사적 429호 구지봉은 가야사 시작의 무대 였다고 합니다
(고인돌)
구지봉의 고인돌은 수로왕의 가락국이 아닌 구간 사회의 무덤 이였다고 합니다
한석봉의 필체로 새겨져 있답니다
창녕 빛벌가야(비화가야)
신라 진흥왕 척결비
서기 561년(진흥왕22년) 대 가야 멸망 1년전
진흥왕을 따라온 군신 42명이 관등에 따라 적혀져 있습니다
(동삼층석탑)
8세기 중엽인 통일 신라시대에 세워진 탑
(경북 고령 대가야국)
520년간 대 가야국의 도읍지였고 우륵선생의 출생지였으며
대 가야시대에 축조된 고분 200여기가 위치 하고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암각화
겹동근무늬(동심원)와 십자무늬,탈모양(가면형)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 대형 순장묘인 44분)
30여명 이상의 순장자가 묻혀있어 당시 발굴에 참여 했던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순장묘의 전시관
지산동 고분군 45호 순장자로 1500년전의 실제인골
고령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