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1
요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참 반가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까지 말 춤을 추는 것을 보니까 참 <강남스타일>의 위력이 대단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한국의 대표로 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겠습니다. 대중문화는 어디까지나 대중문화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지속적으로 지구촌에 전파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한국의 고급문화, 전통문화가 혼 불을 밝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영국하면 ‘젠틀멘’이 떠오르고, 일본하면 ‘사무라이’가 생각나는데, 한국하면 ‘선비’가 떠오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선비정신>이야말로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선비정신>은 <선비리더십>을 낳았습니다.
<선비리더십>은 유학의 발상지인 중국은 물론 유교 문화 영향권의 어느 아시아 국가에도 없는 우리 한국만의 <전통 엘리트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오늘날의 시대를 두고 다 ‘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에서는 그 원인을 ‘무책임한 엘리트’에서 찾습니다.
과거의 책임 있는 엘리트 정신이 다 사라진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시점에서 볼 때 한국의 <선비정신>은 새로운 각성의 촉매제입니다. 그리고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지구적 가치인 엘리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선비>라는 개념은 세계적으로 볼 때 아주 유니크 하면서 독보적인 개념입니다.
동시에 지구촌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글로벌 인간형입니다.
올바른 학문과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벼슬을 했든, 초야에 묻혀 살았든,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선비>라는 자격을 인정받기도 하고 못 받기도 했습니다.
이론만 앞세우는 자는 멸시 당하고 오로지 실천과 용기를 지닌 자들에게만 부여했던 존경과
믿음의 칭호가 <선비>이었습니다.
<선비>는
특권을 가지지도 않고, 군림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백성을 위해 통치자들을 향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정심과 정도를 가르치기도 하고,
솔선수범하면서, 국가나 민생이 위기에 처하면 살신성인 할 줄 알았습니다.
<선비>는
통치를 하는 자와 통치를 받는 자들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그러한 힘으로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500년 이상의 정권을 유지했던 우리의 역대 왕조들을 보면 <선비정신>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무사도 ‘사무라이’… 영국의 기사도 … ‘젠틀맨 쉽’ … 그보다 훨씬 고차원의 학식과 도덕으로 무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선비정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자들에 의해, 조선 낙후의 원인으로 매도되었고, 얼토당토않게 당파싸움이나 일삼는 망국의 원흉으로 조작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우리 스스로도 그 진가를 모른 채 덩달아 폄하 해오던 단어가 <선비>가 아닐는지요.
그렇지만 우리들의 피 속에 무의식으로 흐르며 이천 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민족 고유의 엘리트 정신인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세계의 기적으로 불리는 오늘의 한국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 한국인의 자긍심과 자부심의 연원이 <선비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사무라이를 미화하는데 성공한 일본은 심지어 왜구까지 미화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캐리비언의 해적을 영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웅장한 영화음악으로 포장하여 세계에 수출하고, 영국은 해적 출신에게 귀족 작위까지 부여하면서까지 자국의 전통 이미지를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우리의 <선비>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그 진실한 이미지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선비>를 소재로 세계인을 감동시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세기의 작품을 기다려 봐도 될는지요. 선비 형 인간을 세계에 소개 시킬 수 있는 <선비>에 관한 예술작품이 반드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